안녕하세요. 장석현입니다. 저번 글을 보내고 받은 답장들을 보고 저도 다시 글을 써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답장 중엔 제 글을 읽고 어떤 시가 떠올랐다고 알려준 답장도 있고, 현재 자신의 근황을 알려준 답장도 있었어요. 어떤 답장은 그와 나 사이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어제 그의 답장을 다시 읽어보며 그 추억을 탐험하던 중 부고 문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고3 때 친한 친구를 떠나보냈어요. 그때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어제 문상을 다녀온 고인과 저는 사실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전 일면식도 없지만, 제가 아는 누군가와는 평생을 함께했을 사람을 추모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추모(追慕)’라는 단어에는 ‘그리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추억이 없어도 추모할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오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죽음을 잘 이해하고 싶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데 망설이고 싶지 않아요. 죽음이라는 이야기가 무겁고 우울해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로 쉽게 귀속되어 버리는 게 무섭습니다. 작년 학과 친구들과 5주간 에세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언급한 적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누군가의 첫 기억이 될 수 있기에. 그렇기에 시간과 죽음은 알수록 아프고 무서운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모님께서 우는 모습을 장례식장에서 처음 본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 어린아이처럼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 외할머니께서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체면과 상관없이 울음을 터트리게 되는 것. 저는 이 인과관계의 한가운데에서 오래 버텨보면서 잊히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의 숙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학기에 고 3이 되어야 할 여자 아이는
머리 박박 밀고 입에 마스크 하고 신승훈인가,
이승환인가 요즘 나오는 발라드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래, 노래라도 해라, 얘야, 노래라도
자꾸 불러라, 시어머니 병수발하던 옆 침대
아줌마가 중얼거린다 달포 전 아침부터 토하고
설사해 정밀 검사 받아보니 간에도 폐에도 암은
퍼진 지 오래여서, 그래도 그 엄마 울고불고
수술은 해야겠다기에, 거의 배꼽 근처까지 장을
잘랐다는 아이, 잣죽이나 새우깡 부스러기 먹는
족족 인공 항문으로 쏟아내고, 또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미치겠다고 제 엄마 졸라 매점 보내고
나서, 아이는 베개 한쪽에 뺨을 묻고 노래부른다
왜 이렇게 가슴 뛰느냐고, 왜 이렇게 행복하냐고
6인 병실 처음 들어오던 그날, 왜 내가 죽느냐고
왜 나만 죽어야 하냐고, 그리 섧게 울던 그 아이는
이성복,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느냐고」
어떤 시는 잊히지 않습니다. 살다가 어느 순간 제게 달려옵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꼭 읽었을 이성복 시인의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느냐고」가 저에겐 그렇습니다. 왜 잊히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압니다. 잊히지 않는 시를 썼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에요.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이 시가 좋은 것 같습니다.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학원을 그만둘 때 사실 학생들이 절 잊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마지막 수업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쓴 방법 외에도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은 참 많습니다.
최근 뉴진스의 하니가 도쿄돔에서 부른 <푸른 산호초>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는 일본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표곡인데, 80년대 버블 경제라 정의되는 일본의 경제 호황기에 큰 인기를 끌던 곡으로 지금까지 일본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아있다고 해요. 사실 이 노래를 처음 듣는 건 아닙니다. 영화 <러브레터>에도 나오는 노래라 들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그를 찾던 친구들은 그를 찾지 못하고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부르는 이 노래만 듣습니다. 그가 좋아하지도 않던 아이돌 가수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를 부른 이유는 가사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あー私の恋は 南の風に乗って走るわ(아~ 나의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가) あ- 靑い風切って走れあの島へ(아~ 푸른 바람을 가르고 달려가 저 섬으로)”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일본 북쪽(오타루)에 살고 있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남풍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도 같게 느껴집니다. 그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이 노래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본의 경제 호황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하니가 부른 <푸른 산호초>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기획안 민희진 대표는 ‘노스텔지어의 악마’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노스텔지어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월드컵 시즌마다 2002년의 붉은 악마와 ‘승리를 위하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레트로부터 뉴트로까지 과거를 상징하는 트렌드는 계속됐습니다. 저는 학과 사무실에서 LP를 듣고,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상한 모습을 연출했었습니다. 매체나 사물을 통해 접한 것이 나의 과거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갖습니다. 어쩌면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쉽게 얻을 수 있기에 반대로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더 커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