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시인이신 정우신 선생님과 만날 자리가 있었다. 여러 대화가 오갔지만(거의 일방적인 대화였다.),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에게는 시를 써봤다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나에게는 꼭 써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시든 다른 글이든. 선생님께서는 내 눈빛을 보고 써야 할 게 많은 눈이라고 하셨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습작생인지라 그 말을 듣고 꽤 많이 설ㄹㅔㅆ었다. 내 눈빛이 시를 써야 하는 눈빛이라니 어릴 적 운동할 때 눈빛 좋다는 말을 듣고 좋았었던 기억도 떠오르면서 여기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도 생각났었다.
2022년인가 수업 중에 영화를 분석하는 과제를 한 적 있는데, 선생님께서 따로 발표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길게는 아니고 내가 분석한 것을 다른 학생들도 같이 알 수 있게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영화는 아포칼립토였는데, 내용은 주인공이 일정 사건 이후 본인이 살던 마을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우에서 좌로 뛰는 모습이 많이 나온 것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가 보는 동영상이나 그림에서 시간의 흐름은 좌에서 우로 이동한다. 당장 우리가 보는 유튜브의 타임라인만 봐도 좌에서 우로 가지 않는가. 주인공의 움직임이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것이 주인공의 목적에 의한 움직임이라고 해석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일단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 좋다. 그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봐라. 그리고 주인공처럼 행동해 봐라. 세상이 정한 기준에 반대될지라도 목적을 갖고 움직이면 그것도 예술이 되지 않겠냐.”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서 뭔가 분출(?)해 내고 싶다는 욕구가 솟기 시작한 것 같다.
여기현 선생님께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크게 위안을 얻은 바 있다. 제일 크게 감동받은 말씀은 블로그에도 쓴 적 있지만,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 한다는 옛말이, 지금은 젊음을 갉아먹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그래도 살아보니, 그 말에 의미가 있더구나.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였다. 괜히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아니다. 생각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열려있는 분들이고 그걸 응원해 주시고 지원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들인 것 같다. 그런 스승의 사랑을 받은 나는 뭘 하고 살고 있나 조금 반성하며 살아봐야겠다. 일단 학원에서 나는 선생은 아닌 것 같다.... 수업 중에 자면 잘자라고 하니까...
그럼 내가 뭘 써야 하냐에 대한 고민은 아직 답을 모르겠다. 그 답을 찾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몇 없지 않을까 싶다. 내가 주로 쓰는 것을 생각해 보면 주로 사회에서 빛을 받지 못한 것들이 주된 것 같다. 요즘엔 그걸 벗어나 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 마음대로 글을 쓰는 건 그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쓰지 않고 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좀 더 많은 경험이 있어야 하고 더 많은 공감과 활동이 필요한 것 같다.
문학의 역할 있다면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삶도 있다고 세상 일부분을 들춰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할을 위해 내 삶의 일부분을 희생하는 게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또 그런 시를 쓰는 사람들이 좋아 찾아보고 있다. 작년 시 창작 수업 때 장석원 선생님께서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젊은 날 일부분을 시를 쓰면서 보내는 게 생각보다 멋진 일이라고. 그 멋진 일을 해내면서 지내다보면 내가 뭘 쓰고 싶고 뭘 써야만 하는지 알고 그걸 위해 나를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발송본은 분량이 매우 짧습니다. 학원에 A형 독감이 돌더니 저도 걸려버려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은 탓입니다. 빨리 회복해 다음 글은 더 길게 작성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