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2주간 다가오는 패배들을 잘 버텨냈나요? 다 같이 서로가 얼마나 패배하고 살았는지 얼굴을 맞대고 앉아 경쟁(?)하듯 이야기해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지만, 참석자가 저 혼자일 듯하여 고이 접어보겠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지고 와서 그를 용서하며 숨을 참고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종로에서 뺨 맞으면 한강에서 눈을 흘기기는커녕 방안에 틀어박혀 혼자서 엉엉 우는 게 내 특기인걸. 사실 울지는 않습니다.
오늘 제목은 잔나비의 “나의 기쁨 나의 노래”라는 노래의 가사인데, 지금 제 밤이 딱 별 볼 일 없는 섭섭한 밤이에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는 잔나비를 좋아합니다. 92년생 원숭이띠들이 모여 만든 밴드인데, 사람들은 감성이 좋아서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잔나비의 가사들이 좋아요. 처음 잔나비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날도 모종의 이유로 엄청 혼나고 침대에 누워 잠 못 자던 밤이었어요. 보름달과 눈싸움을 벌여 이겨야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뒤척이다 유튜브나 보다 자야겠다 싶어 들어간 유튜브는 ‘로켓트’라는 노래를 들려줬습니다.
아직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꼭 들어보세요.
“그댄 나의 Universe. 힘찬 나의 로켓트. 저 멀리 날 보내줘.”
그때부터 잔나비에 대한 팬심은 깊어져 갔어요. 잔나비의 노래들은 신날 때 흥얼거려도 좋지만, 힘들 때 가사를 중얼거리다 보면 기운이 나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썩어가는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면 정신의학과로 보낼 생각은 집어넣고 잔나비 노래 들려주고, 시원한 기네스 한 잔 사주세요. 그러면 당신께 몸과 마음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쉬운 사람입니다. 제가.
제게 기네스를 사주는 사람을 생각하다 ‘그런 사람이 내 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어제 박정민 배우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이 “내 편”에 관한 내용이었거든요. 박정민 배우님께 편지를 받는다고 하니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별거 아닙니다. 클릭 한 번으로 김소연 시인과 박정민 배우의 편지를 받을 수 있길래 마우스를 누른 것뿐이에요.
박정민 배우님은 이문재 시인의 ‘문자메시지’라는 시를 같이 보내주셨어요.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_이문재, 「문자메시지」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시인은 동생에게 백만 원과 문자메시지를 받고 그 문자메시지를 시로 옮겨 답장했습니다. 이문재 시인이 따로 동생에게 답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의 형제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아마 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가끔 그런 관계가 있습니다. 굳이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관계가. 어려서부터 친구로 지내 서로의 기념일을 어쩌다 보니 외우고 있고, 서로를 챙기는 것에 무심해진 친구들. 지금 생각하니 몇 명 떠오릅니다. 장0성, 백0현, 전0현 뭐 이런 애들. 실명을 쓰기엔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친구들이라 이름을 좀 가렸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샐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거든요. 여기에 이름이 안 적혀있다고 질투하지 마세요. 이거 신청한 사람은 일부러 지웠습니다.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온전한 내 편을 찾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편이 아니기도 하고, 내 편이 아닌 사람들끼리 편을 먹고 나를 이겨 먹으려 들기도 하고. “인생 혼자 사는 거지 뭐 X발~”을 외치던 친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단에 기대있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제가 그 친구의 부모가 된 것처럼 싹 다 뒤엎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사랑하는 삶이라는 게 이리도 어려운 걸까요.
‘내 편’을 발음해 보니 꽤 이상하더라고요. 너무 세게 말하면 모니터에 침이 튀기고, 너무 약하게 말하면 ‘내 펴허’가 되어버립니다. 짧은 단어 하나 말하는 것도 이렇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한 사람의 삶을 보듬기란 더없이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이 글이 당신의 삶을 보듬어 주는 것은 애초에 기대도 안 하고 있어요. 다만,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은 얻길 바랍니다.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진 친구에게 시에 쓰려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따로 보관해 둔 문장을 보내줬어요. 그 친구가 ‘너도 나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덜 우울해지더라’라고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물론 답장은 안 보냈어요. 다들 ‘내 편’의 문자메시지에 답장은 시원하게 씹는 2주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