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석현입니다.
생각해 보니 작별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글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지막 메일에 끝부분에서 인사를 남기긴 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세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은 글을 보내면서 많이 부끄러웠고, 미안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써서 보내보려 했습니다.
언어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쓰여요. 살아가다 어느 순간 떠오른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것입니다. 경험은 나만의 것이고, 내면은 공유될 수 없어요. 수술대에 올라 제 뇌를 꺼내 보인다고 해도 여러분은 제 경험과 내면을 훔쳐 가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겪은 고통과 슬픔은 제 신체 어딘가에 새겨지기도 하고 묻어두기도 합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방법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과 내면, 고통과 슬픔이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언어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에요. 아마 이것들이 지나는 터널은 여러분들도 언젠가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조금 덜 외로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모든 글이 서로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과 제 글이 자주 만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에요. 그러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움직여 근육을 만드는 중입니다. 시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마음에 들지도 않고요. 그래도 저는 제 글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블로그에도 썼지만, 제 마음의 부산물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고아가 될 것입니다. 블로그를 안 보셨으면, 제일 하단에 블로그 버튼? 클릭하면 제 블로그로 연결됩니다.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언어는 얼마나 자라있을까요. 자라나는 아이의 키를 벽에 표시해놓듯, 언어도 자라나는 정도를 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제 언어가 다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생각한 시인의 언어들은 참 다정하기 때문이에요. 시인은 시선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던 간에 그것을 최선을 다해 예민하게 바라보고, 언어로 옮깁니다. 그 정성은 참 다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성은 사랑일까요.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기 때문일까요.
한동안 시를 원망하던 때가 있습니다. 왜 내 삶에 들어와 이리도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다가도 몰랐어요. 잊을만하면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너가 하고 싶은 말을 꼭 시로 써야 하냐고 하시더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제 주변 사람들에게 누군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시인이 돼야만 한다고 하시긴 했어요.(자랑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시인이 돼야 할까요. 소설가나 작가가 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마 안될 겁니다. 오랜만에 소설을 써보려 시도했는데, 시작부터 막히더라고요. 혹시 자기만 바라보라고 다른 글을 위한 언어를 다 죽여버린 건 아닐까요.
지금은 시를 많이 좋아합니다. 아닙니다. 사랑해 볼까 합니다. 시 때문에 주변 많은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주 어린아이가 되는 탓에 제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애써 어른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제 글을 읽고, 제 말을 듣고서 때론 웃음을 짓고, 울음을 터트리고, 서운해하고, 춤을 추고, 편지를 쓰는 모든 순간이 모두 나를 향한 사랑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저를 불러주는 음성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크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왕 제 삶과 닿은 인연이라면 무작정 사랑을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대를 버리고 끝끝내 나를 형편없게 만들지라도 꽉 끌어안을 것입니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실패를 예견하는 생각으로부터 파생되는 공포마저도 대신 물리쳐주겠다는 마음으로. 한 번 향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마음이 사랑이니까. 이 사랑은 저도 모르게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 덕분에 불안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할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마저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어느새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고, 그 확신 속에서 단단한 힘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제 블로그에 쓴 글을 일부 가져와 조금 더 써봤습니다. 자기 복제는 저는 모르겠고요, 다시 쓰고 싶었어요. 가끔 제가 쓴 글을 다시 바라보면 친형 같아요. 전 친형이 없는데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가끔 어떤 시를 보면 제가 좋아하는 형들이 생각나요. 그 형들은 다들 하나같이 저에게 "나처럼 살지 마 새끼야."를 외칩니다. 형들은 저보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참 말을 안 듣는 사람이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긴 글렀습니다. 시를 사랑해 보려 하는데 어떻게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 그전에 형들도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기적이라면 어떻게 저보고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하겠어요.
그들이 후회되는 일들을 말해주는 이유는 내가 그 길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겁니다. 아마 형들은 많은 것을 잃었던 것 같아요. 저도 많은 것을 잃지 않을까요. 너도 형들처럼 되지 않을까요. 형들이 슬프니까. 저도 언젠가 동생들에게 "나처럼 살지 마 새끼야"를 외칠 수 있을까요. 참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슬픔이 제가 겪은 슬픔을 이겨내게 해줬습니다. 아, 여러분의 답장(매번 보내는 분이 거의 없었지만.)도 주변에 놔두고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그들은 제게 자랑이 될 수 있겠지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진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입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제 삶에 조금은 숨돌릴 틈이 생기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감당할 만큼의 패배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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